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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이론, 인간은 왜 새로운 야만을 맞았나 - 대중 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1)

https://hbjgg.tistory.com/470 대중문화는 기만일까 해방일까?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0) 예전에는 플러그인 중에 도서 쇼핑몰과 연동해서 도서를 링크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게을러서 안찾아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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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론을 전개하게 되기까지의 아도르노의 생애가 극히 간단히 설명되는데,

안락하고 유복하게 자랐으며, 외가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문화 비평가인 크라카우어의 지도를 받아 철학에 입문하였으며

코르넬리우스의 지도를 받으며 논문을 발표하고, 그의 세미나에서 비판이론의 선구자 호르크하이머를 만나게 된다.

 

그 둘이 동시 저작한 <계몽의 변증법> 이 소개된다

이 글의 물음이 바로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이다.

 

즉, 인간의 합리성 추구(계몽)가 사실 새로운 야만 상태로 인류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계몽은 농촌 계몽에서와 같은 단어는 아닌 듯 하다.

칸트의 표현대로라면 '미성숙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지성을 이용하여 벗어나려는 용기와 힘을 지니는 것'

그리고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여기에

자연의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 자신을 주인으로 세우는 목표를 추구해왔다고 덧붙인다.

 

즉 거대한 자연은 인간에게 커다란 위협과 공포로 다가올 수 있었고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지성을 이용하여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게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인간의 힘이 아니라 인간들이 모인 사회가 필요했고,

사회의 기능을 위해 사회 내부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나누는 양식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는 존재이면서도 사회적 통제가 가능한 주체가 된다. 합리성이라는 이름 하에서)

여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성적 계산과 목적에의 성취를 위한 노력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 내면의 감정, 욕망, 본능, 충동은 모두 억제되고 통제된다. 

 


 

정리1. 왜 새로운 야만의 시작이라고 했는가?

A.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다."

 

물음2. 인간의 내적 본성에 대한 통제는 꼭 오늘날이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던 개념이 아닐까?

뭐 종교에서든, 옛날 왕국이나 여러 정치 체계에서의 법률이든...

흠.. 뭐 추측이긴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자신 감정의 억압이라는 측면은 옛날부터 존재해왔겠지만

그렇게 감정을 억압시켜야 하는 인간의 범위,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합리성의 추구라는 기치가 만연한 정도

자연에 대한 지배의 강화(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이성의 힘의 재확인) 등은 현대에 오면서 점점 더 심화되었을 것 같다. 아마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듯.

 

도대체 대중문화 얘기는 언제 나오는 걸까?

바로 이 다음 '문화산업'이란 이름을 통해서 드디어 이야기가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합리성 추구가 이끌어온 현대 사회의 억압적 현실을 많이 다루었는듯.

근데 사실 안끝났다. 

 


 

합리성 추구가 어떻게 이를 이끌어왔는지 그 원리들을 다루고 있다.

근데 이걸 이미 앞서서 누가 했나봐. 바로 막스 베버의 합리화론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책에는 베버 얘기도 한 단락 정도 언급되어 있는데 사실 이게 더 기초적인 부분이라 내가 생각할 땐 할말이 더 많지만 아도르노 책이니까 우선 패스

(간략하게만 말하면 목적 달성을 위해 그 목적이 갖는 가치는 따져보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합리성의 추구가 만연해졌다고 이야기함)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대상을 지배하려면 애초에 사유 능력을 잃게 된다고 생각했다.

대상을 지배하려면 하나 하나의 특수성을 따지고 있어선 안되고 수치로 바꿀 수 있는 것을 숫자로 나타내어 계산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게 파악해야만 한다고 주장함.

이렇게 효율성과 계산 가능성을 목적 달성이란 이름으로 추구하다보면 진정한 사유 능력을 잃게 되고 이성은 (목적 달성을 위해) 도구적으로 이용된다고 보았다.

 

앞에서 인간은 자연, (사회에서) 인간, 인간 내면(내적 자연)의 세 가지의 지배에 이성을 이용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지배를 달성하기 위해 도구적 이성이 사용되는 원리에는 '동일성의 원리'가 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특수한 건 다 쳐내고 똑같은 것들로 본다는 뜻이다.

 

각각의 대상을 다룰 때 동일성의 원리가 조금씩 다르게 적용되는데,

자연에 대한 지배에서는 특수성의 말살이다.

개라는 녀석들의 특징을 알기 위해 누렁이, 치와와, 진돗개 특수성은 버리고 개라는 개념적 도구를 이용하여 인식한다는 뜻

그리고 인식이 끝났다고 믿는다. (뭐 개 박사가 되려면 각각 알아야겠지만 개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럼 끝이라는 그런 의미인듯?)

 

사회적 지배에서는 교환 가치이다.

교환 가치가 동일한, 즉 가격이 같은 두 상품이 가치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근데 사실 노동의 질, 노동 시간 뭐 등등 가격을 같게하는 그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않고

그냥 가격 같으니까 가치가 같겠지 이렇게 생각하게 될 거거든

(책에서는 노동 시간 같으면 두 상품의 가격도 같아진다고 되어 있는데 이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있다고 하는데 요새 개념하고는 너무 다른 것 같아 없애는게 나은듯. BTS의 1시간과 evot의 1시간은 다르잖어..)

더 좋은 표현은 이거 같음 "자본주의적인 상품 생산 사회 속에서 이차적인 가치로서의 교환 가치가 '고유하고 일차적인' 사용 가치를 현실적으로 대체한다."

 

드디어 대중문화 얘기 나온다..!!

인간 내면(내적 자연)에 지배에 적용된 동일성 원리가 바로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되는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이다.

이는 사람들의 내적 본성에 작동하여 모든 사람이 동질적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며 행위할 수 있게 만든다.

당장 대중이 비슷한 영화를 보고 비슷한 감상을 하고, 유행어를 함께 얘기하거나 하는 것들도 다 그런 것의 일환 중 하나일듯.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되는'

이다. 

 

즉 대중이 직접 만들어낸, 대중의 꿈과 희망을 대변하는 형식의 문화가 아니라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문화 산업을 동일성의 원리가 적용된 것(또는 적용시키는 수단)으로 본 것이다.

 

그럼 과연 문화산업, 즉 대중 문화가 대중에 미친 영향을

아도르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와우... 앞 부분이 참 디테일해서 좋긴 한데 사실 생략하고 여기부터 읽었어도 됐을 것 같은... ^^

사실 세이렌 얘기도 중간에 있는데 빼먹었다. 이거 넣을지 말지 고민도 좀 해보고 다음 장을 써보겠다.

 

오늘은 여기서끝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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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의 특징이 뭐길래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3)

이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hbjgg.tistory.com/477 비판 이론, 인간은 왜 새로운 야만을 맞았나 - 대중 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hbjgg.tistory.com/472 비판 이론, 인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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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의 특징이 뭐길래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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