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학생들 지도하다가 답답해서 쓴다.

나중에 정리해서 칼럼을 쓰자.

 

자기소개서가 사라지고 생활기록부의 기재 내용이 축소되면서,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의 활동 내용과 역량을 소개하는 데 다들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학생부 종합전형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이를 통해 대학을 잘 가기 위한 방법들이 공공연히,

그리고 학생 본인을 비롯하여 외부의 여러 기관, 사람들과 연계되면서 꿀팁들이 많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

 

입학사정관제(그땐 이름이 이거였다.)가 완전히 득세하기 시작한 초기 시절인 나때만 해도

그저 다다익선, 잘 하면 잘 되겠지~ 하는 식으로 고등학생 생활들을 했는데

(물론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니 근데 선생되고 아이들 지도하면서 답답한 점이 크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지

왜 그렇게 해야하는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그렇게 하려고만 한다.

 

이는 맹목적인 발표, 맹목적인 생기부 주문으로 이어진다.

 

1. 맹목적인 발표

발표는 모름지기 들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청중이 있고, 청중의 관심에 있는 얘길 해야하고, (관심이 없다면 관심을 끌어야 하고)

내가 하는 얘기가 왜 중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스스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왜 중요한지 아주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을테니까.

 

그렇지만 아이들은 발표를 하기 위해 발표를 한다.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그건 입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도움이 안되는지는 추후 또 설명하겠지만.

 

내가 본 아이들은 대본을 우장창 작성하고,

얼른 자리에 들어오고 싶어서 (암기까지 한) 대본을 매우 빠르게 읽으며

매우 빠르게 읽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이해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스르르르르를륵 난 이런거 했어요~ 끝.

 

모든 학생들이 그러고 있고,

또 모든 과목에서 발표가 이어지다보니.

교사인 나는 계속해서 이해할 수 있는 발표를 주문, 그리고 들어주는 태도를 강조하지만

이렇게 되다보니 그저 듣고 싶어도 안듣게 되는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

20명 남짓한 교실에서 1명은 줄줄 읊고,

몇 명의 착한 학생만 바라봐주고

나머지는 보고있든 보고있지않든 눈빛은 잃었다.

 

2. 맹목적인 생기부 주문

'엮는다.'

이 표현이 너무 싫다.

또 싫은 표현은 다양하게 있는데, 

 

'심화 탐구', '심화된 내용', '추가 조사', '진로 희망', '확장', '연계'

등등등

 

공공연히 저것들을 해야 학종에서 유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다른말로하면, 저런 활동들이 중요한 활동, 또는 수준 높은 활동으로 인정되고

그것은 그 활동을 진행한 학생들의 높은 역량, 또는 높은 호기심, 탐구력 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는 사실이 공공연한데

 

너무 큰 오해는

저 말들이 들어가면 탐구력이 높은 것이고,

저 말들이 들어가지 않으면 탐구력이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탐구에 관해서 이해를 하지 않으니

그저 입시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단어로만 기억하고 있으니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다시 돌아가보면

'심화 탐구', '심화된 내용', '추가 조사', '진로 희망', '확장', '연계'

라는 표현들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저 표현들이 '직접적으로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으로, 어떤 걸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심화 탐구라는 것은 말그대로 깊게 탐구, 즉 찾아서 생각해보고 조사해보고 연구해보았다.

이 뜻이다.

 

'깊게'도 빼먹었네 학생들 소감문 제출할 때마다 '깊은 생각을 해 보았음' 이라고 하는데

그래

 

'깊다'라는 것은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심화적인 내용'이라는 것도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수준을 넘어가면 심화적인 내용이라고? 그런것(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를 잘 하지 못한 채, 이런 표현들이 들어가기만을 원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누가 쫌 다같이 모아놓고 설명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수업시간에 틈틈이 해보거든? 그래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안내하는 시간이 있음 좋겠다.

 

아 1. 맹목적인 발표에서 그래서 또 발생하는 문제점이 뭐냐면,

다~~~~~~~~~들 느낀점을 발표한다.

 

내가 아는 한, 학생들의 이런 발표 외에는

본인의 느낀점은 설명하는 발표는 없다.

느낀점을 말하면 청중들이 이 발표의 중요성을 깨닫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위해 느낀점을 발표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생기부에 자신의 동기와 느낀점, 알게 된점, 인상적이었던 점을 넣고 싶어서

본인이 레퍼런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느낀점을 말할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떤 누가 발표 내용도 이해하지 못한 채

설령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발표자의 개인적인 감상, 개인적인 성취가 궁금하겠는가?

그들이 들인 노력의 방법이나 정도가 궁금하겠는가?

없기 때문에 다른 발표에서는 느낀점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겠어.

아마 그런걸 발표하면 그대로 기록하는 교사들이 있어서 학생들이 그렇게 바뀐 것이겠지?

발표 내용을 모두 기억하기 어렵다보니 PPT 슬라이드에 글로 기록되어 있으면 생기부 기록될 확률도 높았을 거고,

그렇게 꿀팁이라고 소개되다보니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겠고.

 

하지만 얘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깊은 생각'을 해봤다. '이런 이런 것을 하면서 뜻깊었다.' 라는 표현은 입시에 도움이 그리 크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제발

이거는 교사들이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PPT 맨 마지막장의 느낀점으로 생기부 떼우려고 하지말고,

발표 계획서, 발표 보고서 양식 하나 만들어서

지가 한 게 뭔지 적는 다른 양식 만들었으면 좋겠어.

괜히 엄한 청중 남의 공치사 듣고 있게 하지말고.

 

아니 그럼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계속 느낀점 발표해야 하는가?

뭐 하는 건 좋아 좀 쪽팔리지만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치만 얘도 '난 생각이 깊다.', '심화 탐구 했다.', '뜻 깊은 시간이었다.' 같은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다른 방법 어떤 것을 강조해야하는지 완전히 방향을 틀어야한다.

 

어떻게 하는 지는 뒷 포스트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