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 선생님이 감사하게도 빌려주신 책

그렇지만 빌려놓고도 정말 오랜기간 동안 읽지 못했다

이야기책, 소설책이었으면 별 생각없이 쭉 읽었을 텐데

시집이라고 하니 뭔가 진지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는 행간에 숨겨진 속뜻까지 읽을줄 알아야 하니까

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이 너머를 들여다볼 노력이 필요하니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읽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이 세상에 어디있겠어요 ㅋㅋ

집중못해 허덕이는 시간뿐인데

그래서 차일피일 못읽다가..

결국엔 그냥 느낌이라도 얻자는 식으로 숙숙 읽었는데

그래서 끝냈다.

아쉽기도 하지만 나중와서 보면 그게 더 좋은 것 같기도?

이렇게 읽어서 놓친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또 읽으면 되니까

기회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헛헛


아무튼 그래서

이 책의 특징은 단순한 시집, 혹은 시 엮음집이 아니라

정재찬이라는 국어교육과 교수가

여러 가지 테마를 정해서 그 테마별로 시들을 엮었다는 것.

시를 잊은 사람들과 시를 나누고파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들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것저것 개인의 소회나 생각을 함께 담아서

이야기처럼 한 흐름으로 펼쳐준다는 것.


그런데 이 점이 바로 책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이다.


그냥 일반 시집을 읽을 때는 이따금씩 해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 배우듯이 어디엔 무슨 효과를 사용한 것이고 이런 류의 분석이 아니라

전체적으론 무슨 의미일지,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해설.


그것이 다른 분야, 영화 음악같은 타 매체 예술이나

아니면 흘러간 세월의 이야기들

그런 것들과 종합적으로 섞여서 한 흐름으로 제시되니

평소 읽으면서 느꼈던 필요성은 충족되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조용히 시들을 읽고 싶은데

옆에서 계속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ㅋㅋㅋㅋ

그게 나와 같은 해석이라면 공감되고 좋겠지만

나는 사실 되게 특이한 편이라

대부분의 경우 글쓴이와 생각이 달랐다는 것.


아니 이게 이렇다고?

그게 좋은 거라고?

허허..

이런 식으로 책과 씨름하며 읽게 되던 것


실은 저자도 이런 점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문단에서

자신의 의견과 같아도 좋고

달라도 좋으니

어떻든 시를 읽는 관점이 생긴 것이니, 혹은 부활한 것이니 

계속해서 시를 읽어나가는 여행에 동참하라고 권유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근래 도통 시를 읽지 않았었다.

실은 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읽을일이 없었다. (가~~~~~~~~~끔 시집이나 시 몇 편을 본적은 있지만)


실은 시집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책을 읽을 일이 없었다.

끽해야 전공도서쯤? (그래서 전공책은 다 마스터하셨는지.. ㅎㅎ)


바빠서, 다른 일들이 생겨서, 더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해서

책을 기피하기도 했지만

심심하면 책을 읽었던 예전과는 달리

사실은 별로 들여다보기 싫어졌다고 해야되나


안 보던 드라마도 10분만 보면 스토리와 관계도를 꿰고

앞으로 작가가 내용을 어떻게 펼칠지 짐작이 가듯이

시든 소설이든 그저 빤하게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은

특히 옛날 작가들은

뻔한 소재를 뻔한 관점으로 뻔한 감상을 담아 뻔하게 쓴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도취된 일부 방구석 철학자

혹은 방구석 글쟁이들이 페이스북에 방구석 감상을 남기는 것도

참 뻔하고 잘났다는 생각이 들 무렵.

끽해야 쓴 도치법에 도취되고

방구석에서 떠올린 비유는 흔해빠져서 더 곱씹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수학공부를 하면서 이게 어디에 쓸 학문인가 

그 실용성에 대한 고민이 손에 잡힐듯이 짙어지던 무렵.

옛날 삼국지에서 '한 가지 계책도 못 내면서 검다느니 누르다느니 문장만 희롱한다'며 문인들을 나무라는 제갈량이 떠오르기도 했었던 무렵이다.


그래

메마르고 회의적으로 사람이 변해서

오만한 마음으로 걷어차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고 있자니 진짜 시를 잊은 사람이었네..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이 책을 읽을때도 각각 테마들에 엮어진 시들에 담겨진 삶의 온갖 애상들에도

아니 시에 담길 감상이 애상뿐이 없나 하면서 실망하기도 했다.

일부러 우리네 정서가 담긴 시들을 많이 골라오신것 같긴한데

우리네 정서는 항상 슬프고 외로워야만하냐 이거지

이것도 책에 대한 아쉬움 중 하나


아쉬움 가득하던 찰나에

마지막 읽은 파트는 꽤 재미있었으니

뻔하다 할지라도 그 속사정이나 내용의 변주는 있을테니 말이다.

혹은 빤하지 않은 현대 문학이 존재할수도 있고 말이다. (내가 모르니 존재할밖에)

실은 뻔한 것도 뻔한 재미로 보기도 한다는걸

책을 읽는 내내

인정은 안하지만 계속해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황홀했고, 또 정말 가슴 설렜습니다."

"매 수업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았습니다."

"소름끼칠정도로 감탄했습니다."


라고 책 표지에 쓰여진 서평은 이야기하지만

나한테 그렇냐고 물어보면?

글쎄...


다만 시를 잊은 사람의 우물에 (감정의 우물이든.. 문학의 우물이든..)

물 몇모금 끼얹어서

촉촉하다라는 감각을 되찾았다고 할까

저자의 본 의도도 이것일 것 같다.

그 외의 홍보는 심하다.


다만 앞으로 뻔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찾을지,

아니면 다시 실망하고 안읽을지

등등 미래가 궁금할 뿐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국내도서
저자 : 정재찬
출판 : 휴머니스트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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