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플러그인 중에 도서 쇼핑몰과 연동해서 도서를 링크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게을러서 안찾아봤지만) 글쓰기 탭에는 안보이는 것 같다. 안해야겠다. ㅎㅎ

 

제목 :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저자 : 신혜경

출판사 : 김영사

 

직접 쓰는게 더 귀찮지만...

 

또 동기를 먼저 써보자.

 

이거를 아는 티를 좀 냈더니 예전에 인문학 전공인 우리 누나가 깜짝 놀랬던것 같은데

니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물론 나는 바보 이과생이기 때문에 별로 접점은 없었는디

알게된 건 대학 교양수업이였다.

 

전공 수업을 듣기 전인 1학년 때까지만해도

공부란 무릇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공부하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물론 그때도 열심히는 안했지만)

 

이것저것 강의계획서를 살펴보면서 듣고싶은 교양 수업을 골라들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대중 예술의 이해 수업이였다.

희한하게 2학점짜리 수업이여서 당시 졸업 기준을 채우려면 1학점짜리를 하나 더 들었어야 했으나

(그래서 나같은 바보가 아닌 이상 3학점짜리를 들었다. 1학점짜리 인문교양 수업은 없었기 때문에)

수강하고 나서 굉장히 만족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가수의 꿈이 완전히 접히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그건 지금도 아닐지.. ㅋㅋㅋㅋ

 

아무튼 영상 예술의 이해 수업도 있고 대중 예술의 이해 수업도 있었다.

영화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수업도 있고, 대중 예술 중에 연극에 포커스를 맞추는 수업도 있었는데

내가 들은 수업은 음악도 꽤 다루고.. 영화도 당연히 다루고 좀 포괄적이였던 것 같다.

 

왜 영화가 당연히 다뤄져야 하냐면

대중 예술의 시작이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진, 영화 이런 것 같이 찍히는거, 복사할 수 있는거, 옆사람도 똒같은거 볼 수 있는 거

 

그림은 아무리 똑같이 찍으려 해도 좀 달라지니깐

복제가 가능한가? 그것이 주요한 쟁점이였다.

생각해보니깐 옛날 식 연극이나 구전동화도 대중 예술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접근 안했던 것 같다.

(내 기억엔) 대중 예술은 복제 가능해서 이사람 저사람 즉 대중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바로 그것

 

그래서 수업 중에

아마 대학교 수업이 15주인가 보통 그쯤할텐데

거기서 3주정도는 할애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수업 중에 언급된 것이 벤야민 아도르노 논쟁

 

복제가 가능하여 이사람 저사람 모두 볼 수 있는 예술이 시작되었을 때

과연 그 예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혹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를 다룬 논쟁이다.

 

독일의 벤야민 씨와 마찬가지로 아도르노씨가 얘기한 내용이고

(몰랐는데 서로 프랑크푸르트 학파라고 해서 같은 건물의 무슨무슨 연구소에서 공부하는 학파였고

서로 교류도 많이 했다고 한다. 진짜 논쟁이였나봐!!)

 

그래서 이걸 논쟁한 것이다.

 

대중 예술은 해방이다. 대중 예술은 기만이다.

 

요새는 모든 사람들이 mp3..

와 요새 사람들은 mp3 란 말을 모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음원을 스트리밍해서 듣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는 뮤직비디오나 콘서트 공연 영상같은것도 스트리밍해서 볼 정도이니..

하지만 예전에는 노래를 듣고 싶으면 내가 컴퓨터 파일(의 확장자를 mp3라고 했다)로 된 음원파일을

결제를 하고 다운로드 받은 후에, 여러 휴대용 전자기기에 넣고 이어폰으로 들었다. (아니면 CD로 굽거나..)

그보다 더 예전에는 카세트 테이프나 앨범 CD를 샀고..

그보다 더 예전에는 레코드판을 재생했고

근데 그 보다 더 전에는?

복제가 불가능하던 시절에는 누군가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연주회를 가는 수밖에 없었다.

혹은 돈이 많으면 초청하거나

당연히 예술은 고위 계층의 것이였고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맛보지 못했다.

이것이 복제의 축복이다.

(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전혀 다르다면 수업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해방을 위한 노래, 즉 다른 대중들이 이야기한 노래들도 구전이 아니라 복제하여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것도 해방의 한 요소가 아니였을까?)

 

그러나 복제해서 모두에게 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기만의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쉽게 말해 쓰레기들을 뿌리면 그게 바로 기만이다.

꼭 쓰레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에 신경을 쏠리게해서 다른 중차대한 문제들을 가릴 수도 있다.

쉽게는 어떤 정부의 3S 정책이라든지..

아니면 '바보상자'라는 이름의 전자기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옛날에 뭐 나름 지식인들은 TV를 보지 않았대나 뭐래나

왜냐면 그들(고위층)이 원하는 것만 계획하고 방송하고 틀어주기 때문에

입벌리고 보다보면 바보가 되버린다는 것이다!

 

와우 드디어 동기가 나오는데

근데 이부분이 공감되는 게

꼭 고위층의 기만, 계략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요새는 바보상자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게 돼버렸다.

 

바보상자 또는 부모님에게 눈칫밥먹는 전자기기는

TV에서 컴퓨터로, 그리고 컴퓨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1주에 하는 시간을 제한하고 뭐 그런 룰이 있는 가정도 많으니까

(요새 TV 1주에 몇시간 시청 가능 이런 룰 있는 집안은 못본거 같다. ㅋㅋ 근데 옛날엔 있었음)

 

나도 딱 저 수업 들을 무렵에 대학교 다닐때

그때는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거대하지 않았어서

배터리도 작은바람에

좀만 뭔갈 하면 꺼지곤 했다.

물론 3G 폰 시절부터 그랬지만

한 2년 쓰면 이상하게 배터리가 맛이가서

풀충전해도 하루에 3시간쓸 수 있고 그랬었다. ㅋㅋ

아니 무슨 옛날얘기만하는거같네

 

아무튼 대학생이니까 이제 밖에도 좀 다니고 하는데

갑자기 버스같은데서 이동할 때

핸드폰이 못버티고 꺼지면 굉장히 우울한데

 

근데 희한한건

핸드폰이 꺼지면 비로소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주위를 관찰한다든지..

나의 하루를 돌아본다든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본다든지..

 

핸드폰이 켜져 있으면?

그냥 거기서 뭔가 보기만 하면 돼.

보고싶은 게 당장 없더라도 말이다.

 

이게 꼭 고위층의 기만이 아니더라도

그냥 대중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기로 인해서

나는 점차 그것을 소비하기만 하는

그런 입장이 되어가게 된다.

 

요새 데이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알고리즘의 저주라고도 하는데)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이런걸 하나둘씩 보다보면

끝나지 않고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것도 대중문화의 저주지

혹은 해당 기업의 기만일 수도 있고.

 

그렇다.

결국에 저사람들이 얘기했던 건 옛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저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문화와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갖고 

대중 문화가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야기, 그리고 또 예측한 것인데

 

그게 얼마나 요새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을지

나는 어떤 사람의 주장에 얼만큼 공감하고 어떤건 아닌것 같은지

생각해보고 내 삶,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어 생각해보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https://hbjgg.tistory.com/472

 

비판 이론, 인간은 왜 새로운 야만을 맞았나 - 대중 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1)

https://hbjgg.tistory.com/470 대중문화는 기만일까 해방일까?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0) 예전에는 플러그인 중에 도서 쇼핑몰과 연동해서 도서를 링크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게을러서 안찾아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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