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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기만일까 해방일까?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0)

예전에는 플러그인 중에 도서 쇼핑몰과 연동해서 도서를 링크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게을러서 안찾아봤지만) 글쓰기 탭에는 안보이는 것 같다. 안해야겠다. ㅎㅎ 제목 : 벤야민&아도르노,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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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이어집니다.

 

이 책은 김영사 출판사의 지식인 마을 기획 시리즈 중 30번째.

이 시리즈는 누구&누구의 형태로 지식인 두 명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공통으로 하며

공통적인 형식도 있다고 한다. 초대, 만남, 대화, 이슈의 순서를 따른다.

 

'초대'에 해당하는 부분은 나의 동기와 함께 (0)번에서 대략 얘기한 것 같고 (기만이냐 해방이냐)

아도르노는 기만으로, 벤야민은 해방으로 대중 문화를 인식한 것 같다.

 

기만이든, 해방이든 이야기를 하려면

누군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악랄한 존재가 있어서 대중을 기만하든가,

아니면 악랄한 존재의 억압에서 대중들이 해방되어야 한다.

 

즉, 이 사회에 억압이 있어야 하고

이 억압을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한게 프랑크푸르트 학파, 또는 비판이론 사상가들이다.

 

한나 아렌트 책도 동시에 읽고 있지만

이 시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들었던 생각 등은 비슷한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이벤트들을 관찰하고, 실은 몸소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나 아렌트도, 벤야민도, 아도르노도 이 시대의 유태인이란 공통점이 있고 아렌트 책에서는 아렌트가 벤야민 등과 직접적으로 교류했다고도 언급됨. 한나 아렌트를 비판 이론 사상가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리는 틀림없다.)

 

이 시대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세상은 절망적이다.

가장 큰 계기는 역시 2차 세계대전(WW2)

발달된 무기를 이용한 서로간의 대학살 (WW2는 WW1과 다르게 무기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종 대학살이나 생체실험과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폭함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했던 전체주의 사상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세상을 끌고 갔는지 직접 목도했을테니 말이다.

 

각자의 사색에 빠졌을 것이다.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과학적 발전

그리고 그 과학을 뒷받침하는 인간의 합리성

이것이 어떻게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을까?

 

책에서는

아도르노는 세계 대전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인간의 합리성 추구가 필연적으로 낳은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보자.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는 아도르노를 이해하기 위해 비판 이론이 무엇인지 소개된다.

 

- 이하 내용(이지만 내 생각과 섞여있을 수 있음) -

 

비판 이론(Critical Theory)의 '비판'은

칸트와 마르크스의 비판에 근거를 둔다.

 

칸트는 신성이란 이름으로 종교가, 위엄이라는 이름으로 법이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을 종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 이성을 이용해서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비판이였다.

 

그 과정을 거쳐 정립해나간 것이 이론이므로

이론은 이성적 비판의 결과물(또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이를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이성을 사용하여)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 또는 '이론의 범위와 한계는 무엇인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를 자본주의와 고전적 정치경제학에 적용한 사람이 마르크스이다.

이에 대해 책에서 자세히 다루진 않지만, 뭐 다들 알다시피 자본주의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을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제학을 폭로한 것을 얘기하는 것일 테다.

폭로하려면 그 경제학이 숨기고 있는 전제 조건이나 사실들을 생각했어야 할 것이고

이것이 바로 비판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처럼 이 세상에 모순적인 구조가 있으며,

그 구조는 이론들에 의해 정상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고,

그 포장을, 그 모순적인 구조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이 비판이론 사상가들의 목적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데, 저자는 이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마르크스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걸 목격했다.)

② 사회주의 국가에서 또다른 모순 (독재적 정치체계)이 일어남을 관찰했다.

③ 자본주의는 스스로 파멸하지 않았고(적어도 당시에는, 그리고 현재까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불만 속에 혁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문화를 향유하며 잘 살고 있었다.

(+ 세계대전 사이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혁명같은건 전체주의적 찬동에 엄청나게 억압받고 있었고,

이는 독재적인 강압이 아니라 그 국가 국민들의 열렬한 찬동 하에 이루어졌다.)

④ 마르크스 주의의 하부구조 결정론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생산, 생산력을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나눠가지느냐가 토대가 되어

이 토대가 문화, 법, 예술, 의식, 종교 등 사회 문화적인 부분들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축소해서 생각하는 결과를 낳았고

우리가 논쟁의 주된 내용을 알듯이, 벤야민과 아도르노와 같은 사람들은 문화가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는) 예속되는 관계에 있다고 믿은 것이 아니라

문화가 대중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했다.

 

아니 이 부분은 어제 읽은 부분인데

여기까지 쓰니까 귀찮아졌다.

오늘 읽은 부분도 있는데.. 

걔는 엄청 짧게 써야지. ㅎ

 

우선 마무리(가 아니고 잠시 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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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이론, 인간은 왜 새로운 야만을 맞았나 - 대중 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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