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 문제와 그 답에 관해 논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교사로서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여기에 작성된 생각이나 글은 학교나 기타 기관의 수학 문제와 그 정답 인정에 어떤 방식으로도 이용될 수 없음을 미리 밝히고 또 당부합니다. 암묵적인 룰을 따르세요.

 

1. 수를 센다는 것

 

수를 세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어나는 일로, 사과의 갯수, 사람의 수 등등 주변 사물들의 갯수를 세면서 시작될 것이다.

수를 세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보자마자 (예컨대) 7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혹은 그 과정을 뜯어보면) 이렇게들 말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 , 일곱!"

 

수는 하나에서 시작한다.

 

그럼 아래 빵의 갯수를 세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세 개라고 할 것 같다.

 

 

근데 세준이가 빵칼을 가져와서 각각의 빵들을 반씩 나누었다고 해보자. 아래 그림이다.

이때 빵이 몇 개냐고 물으면 몇 개라고 답할까?

많은 사람들이 여섯 개라고 할 것 같다.

 

 

수를 센다는 것은 하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하나라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어떤 것을 하나라고 할지는 무언가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가?)

잘린 빵 그림(아래 그림)을 여섯 개라고 부르든, 원래 빵 크기를 상기하며 세 개라고 부르든 어떤 경우에도 이를 비합리적이라거나 틀렸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2. 경우의 수

 

경우의 수도 수다

 

'경우의 수를 구하시오' 라는 말은 사실 '경우의 수를 세시오' 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직접 일일이 세지 않기 위해서 합의 법칙이니 곱의 법칙이니 이름 붙인 법칙을 이용하게 된다.

 

어쨌든 그 결과물은 세어진 수이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 (또는 똑같은 원칙)에 도달한다.

"무엇을 하나로 볼 것인가?"

 

경우의 수, 확률 단원을 수업하면 아이들의 질문이 참 많다.

그 중 상당수는 문제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질문이다.

"이거 이게 답 아니에요?"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갖고 온 문제를 열심히 읽다보면 이 사람이 잘못 해석한 부분을 찾을 때도 있지만,

나도 못 찾고 학생의 해석이 일리있다고 여겨질 때도 많다.

사실 나부터가 학생때부터, 혹은 지금까지도 읽으면 뭘 구하라는 건지 모를 때도 있고..

 

누구는 (특히 국어 선생님들이 많이) 말한다.

시험은 출제자가 있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며 답을 내야한다고.

나는 (이 경우엔 특히) 동의하기 어렵다.

 

3. '하나'를 합의한다는 것

 

빵의 갯수를 구하는 문제로 돌아가보자.

빵의 갯수가 6개냐 3개냐 혹은 다른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그냥 일어나면 의미가 없다.'

왜냐면 어떤 단위를 1이라고 볼 것이냐는 것에 정해진 답이 있을리 없고, 이는 전적으로 합의에 근거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한 몇 개라는 해답의 타당성은

갯수를 구하는 맥락이 먼저 주어지고, 그 맥락에 부합하는지 검토하는 합의의 과정이 있을때만 얻어진다.

 

빵 문제라면 예를 들어 

'빵 심부름을 하기로 했는데 1개 배달할 때마다 3천원을 받기로 했다던지..'

'빵을 아이들에게 나눠줘야 하는데 공평하게 나눠주기로 했다던지..'

(더 심하게는) '빵을 형제가 나눠갖기로 했는데 큰 형은 몸이 크니까 (더 큰 크기의) 빵 1개를 받고 나머지 동생은 작은 크기의 빵 1개씩 나눠갖는다던지..'

맥락이 주어진 후에야 답을 논할 수 있다.

 

4. 맥락을 상세히 부여하기에는 말이 길어질까봐 그게 싫은 나머지 몇 글자로 맥락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다가 어떤 것을 인정해야하는지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되어버려서 사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몇 글자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답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시험 문제식 문제들이 만연한 현실에 대하여

 

이제 드디어 문제를 보자.

고1을 두 번 가르치면서 교과서 두 개를 만났는데, 2종 모두에 (비슷한 내용이) 실려있던 문제이다.

 

첫 번째 교과서

"서로 다른 주사위 2개를 동시에 던질 때, 나오는 눈의 수의 차가 1 이하인 모든 경우의 수를 구하시오."

두 번째 교과서

" 서로 다른 두 개의 주사위를 동시에 던질 때, 나오는 눈의 수의 합이 6 또는 9가 되는 경우의 수를 구하시오."

 

해설을 적긴 귀찮으니 각각의 교과서가 제시한 답이 16, 9란 것만 밝혀둔다.

 

많은 학생들이 첫 문제를 풀 때 큰 어려움 없이 16이라고 답한 반면

한 학생(이름을 ☆이라 하자.)은 굉장히 난색을 표하며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 설명은 이랬다.

"주사위 두 개를 던질 때 나오는 눈의 수의 차가 1 이하인 경우는

1) 눈의 수의 차가 0인 경우

2) 눈의 수의 차가 1인 경우로 나뉘구요.

 

1) 눈의 수의 차가 0인 경우는

두 주사위가 모두 1인 경우

모두 2인 경우,

모두 3인 경우,

모두 4인 경우,

모두 5인 경우,

모두 6인 경우로 다른 친구들 처럼 6가지가 돼요.

 

근데

2) 눈의 수의 차가 1인 경우는

두 주사위가 각각 1과 2가 나오는 경우,

두 주사위가 각각 2와 3이 나오는 경우,

두 주사위가 각각 3과 4가 나오는 경우,

두 주사위가 각각 4와 5가 나오는 경우,

두 주사위가 각각 5와 6이 나오는 경우로 5가지에요.

 

그래서 합치면 6+5=11 가지에요."

 

학생들은 정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 교과서 뒷쪽 부록에 문제 답이 나오긴 한다.)

모두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무엇을 답이라고 해야 할까?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모든 반에서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아주 여러 반응이 나오지만 반마다 한명씩은 말하는 것은

문제에 제시되기를 '서로 다른' 주사위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의 답은 이 경우엔 맞지 않고, 16이 옳은 답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마 중학교 때부터 그러한 표현에 주목하도록 학습이 되는 것 같다.)

 

그럼 나는 묻는다. '같은' 주사위를 두 번 던지면 ☆의 풀이가 옳은 풀이가 되고, 원래 16은 답이 아니게 될까?

 

그럼 던지는 데에도 순서가 있으므로 구분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럼 '서로 다른' 주사위이건 '같은' 주사위이건 달라질 것은 없는데 왜 처음 문제에서 16이 나오는 보편적인 풀이만 타당하다고 할까?

어떤 학생은 "그럼 같은 두 주사위를 동시에 던지면 돼요"라고 했다가 같은 주사위를 어떻게 동시에 던지니? 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ㅋㅋ

 

'서로 다른' 이란 표현은 이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교사를 위한 지도 참고사항에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표현이지만 

(두 번째 교과서에는 "'서로 다른' 주사위란 말이 있으므로 (1, 5)와 (5, 1)을 구분해야 함을 이해하게 한다." 라고 아예 적혀있다. - 지도서와 완전히 같은 문장은 아니고 축약 및 수정하였으며, 작은따옴표는 내가 넣은 것임)

 

내 생각에는

저 표현이 답 16의 타당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보편적인 해석(16)과 ☆의 해석(11)의 차이에 숨어 있는 것은

사실 어떤 것을 1로 볼 것이냐 하는 수 세기의 근본적인 전제에 관한 논쟁이다.

보편적 해석에는 (1,2) 와 (2,1)이 서로 다른 두 가지였던 것이 ☆의 해석에서는 '두 주사위가 각각 1과 2가 나오는' 한 가지 경우가 된다.

 

내 생각에는

전자로 해석할 것이냐 후자로 해석할 것이냐는 '주사위가 서로 다른가?' 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초에 두 개의 주사위는 '항상'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구 자체로는 의미있지도 않은 표현이다.

 

보편적 해석과

☆의 해석은 서로 관심을 다르게 두고 있을 뿐이다.

☆은 보편적 해석과는 달리 어떤 주사위에서 어떤 숫자가 나왔는지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두 주사위에서 나오는 숫자의 조합만이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나오는 숫자의 조합만을 중요시 했다고 해서, 이것이 '두 주사위를 던졌을 때 눈의 수의 합이 1이 되는 경우'의 수를 구하지 못했다고 할 것인가?

 

그렇게 자신있게 말한다면 나는 자신있게 옳지 않은 교육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보편적 해석과 ☆의 해석은 그저 관심사가 다르고, (앞선 내 표현에 따르면 생각하는 맥락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한 개로 보느냐에 따라 서로간의 불일치를 보이는 것일 뿐이다. 누가 틀리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교과서에 제시된 최초의 문장에는

어떤 맥락도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맥락 없이 단순히 빵의 갯수를 구하라고 한다면 그게 3개든 6개든 뭔 상관이겠는가?

 

따라서 '서로 다른'이란 표현이 있어서 이 문제는 문제 없다라고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이란 표현이 있으면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석하도록 되어 있는 합의에 관해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고

암묵적인 합의가 아닌 명시적인 합의로 이끌어내지려면 어떤 대화가 필요한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고

교과서에 제시된 저 문장만으로는 새로운 맥락이 주어지지 않는 한 명시적인 합의는 있을 수가 없다라면

문제의 문구를 어떻게 수정해야 오해가 없을 것인가 혹은 저런 문제가 제시되는 것 자체에 다시 고민해야할 것이다.

 

아직도 주사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가?

 

본문에 담지 않은 다른 생각들

1. '서로 다른 바구니에 서로 같은 공을 넣기' 등과 같이 사실 경우의 수에서 '서로 다른' 또는 '서로 같은' 이란 표현은 자주 등장한다. 서로 같은 여러 가지의 공이라는 것은 공이 여럿이지만 서로 같다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기 보다는, 서로 다른 공이지만, (1번 공과 2번 공이라고 했을 때) 1번 공이 A 바구니에 있고 2번 공이 B 바구니에 있는 상황과, 1번 공이 B 바구니에 있고 2번 공이 A 바구니에 있는 상황을 하나의 경우로 보겠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합의들은 사실 '문제 풀이'라는 상황하에서만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합의들이다.

'서로 같은' 또는 '서로 다른' 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한 상황들을 다른 것으로 본다, 또는 ~~~한 상황들을 같은 것으로 본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아주 축약된' 표현임을 (교사가) 이해시키든 (학생이) 뉘앙스를 알아차리든 하여야 한다.

 

결국, 아주 축약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암묵적인 합의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합의를 인정해야 할 정도로(그리고 그 합의들을 모든 학생에게 설명해야할 정도로) '축약'된 표현이 소중한가?

합의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정답은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는가?

 

2. 본문에서 보편적인 해석과 ☆의 해석은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고려 사항이 다르다고 이야기했었다.

'서로 다른'이란 표현과 그에 대한 합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그 표현 때문에 답이 16이 됨을 인정할 경우에는 '관심에 따라 무엇을 '하나'로 볼 것인지가 달라진다.' 라는 합의의 관점이 두드러지기보다

 

'서로 다른' 이란 표현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조건'이 되는 조건의 관점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관심사에 따라 00을 답이라고 할 수도 있고, 00을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라는 능동적인 문제 해결자로서의 학생이 아니라

 

문제에 제시된 제한 조건에 부합하는 답안을 제출(제시)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학습자로서의 학생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란 표현이 그러한 암묵적인 상황(~~같은 경우를 서로 다른 경우로 보는)에 대한 축약된 표현임을 인정한다고 해도

 

도대체 왜 '서로 다른' 주사위를 던진 경우의 수를 구해야 하는지, 혹은 구하고 싶은지는 문제에 전혀 드러날 수 없다.

 

자신의 원하는 바에 따라 원하는 대로 경우의 수를 세고 또 그것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서로 인정하는, 그런 수업, 교실이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