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11월 모의고사(전국연합학력평가)였다.

3학년은 수능 끝나서 수능 이후 입시를 준비하느라 정신 없을 때(면서 잘 놀때 ㅎㅎ)고..

1,2학년이 이제 모의고사를 보았다. 사실 1년에 여러 번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제 마침 또 생각나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1은 수학 모의고사를 안 보면 어떨까 한다. (사실 내신 시험을 더..)

모의고사 시험이 엄청난 단점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거나 아니면 내가 극단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등의 반대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별로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에 몇 개 적어보고자 한다.

 

제목을 뭐라고 할까?

고1 모의고사 수학 과목을 임할 때 유의해야할 점?

이 정도면 무난할 것 같다. ㅎㅎ

 

아래에 고1 대상 수학 과목으로 모의고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좋겠는 이유를 적어볼건데,

사실 모의고사 시험 자체가 갖고 있는 단점이라기보다는

그걸 둘러싼 제도나 사람들의 인식, 학생들의 공부방법, 사교육 시장 등등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과 맞닿을 수 있는 점들이라고 생각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시작

 

1.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에 제시되는 내용들은 본디 고등학교 수학의 주인공들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고등학교 수학 전체 스토리에 비추어봤을때 고1에 나오는 얘네들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 대상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르게 비유해보면, 소갈비를 구워먹다가 갈빗대만 남았을때 어른들이 으레 하듯이

"여기 있는 고기가 진짜야"라고 하면서 싹싹 핥아먹을 정도의 내용들은 (전체 스토리에 비추어 보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기뼈를 강아지들한테 주면 강아지들은 심하게는 뼈까지 씹으면서 즐기려고 할 텐데..

그 정도 (싹싹 맛보며 즐겨야만 하는) 느낌의 것들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고1의 복소수

고1에서 처음 배우는 복소수는 이차방정식의 허근을 이해하기 위해 배운다.

(삼차 이상의 다항방정식에도 허근이 있을 수 있지만 주로 이차방정식이므로 그걸 적었다.)

물론 (관심있는 아이들이 검색하고 발표하는 것처럼) 복소수를 학문이나 실생활에서 응용하는 사례 또한 상당수이겠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수학에선 그런 것들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데 배운 복소수를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는 복소수를 통해 학생의 깊은 사고를 끌어내기 위해 (혹은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문제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 예를 들어보자면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복소수가 순허수이다.'라는 명제를 이용해서

(m-n)+(m+n)i 꼴의 복소수를 제곱했을 때 음수가 된다면, 순서쌍 (m, n)에는 어떤 규칙이 있겠는가?

와 같은 문제를 '풀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복소수 뿐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많다.

나머지정리 또한 전체 스토리 상에서는 인수정리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다항방정식의 해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학습을 통해서 그 흐름과 스토리를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머지정리의 유용성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혹은 역시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문제들 또한 많이 존재한다.

이 역시 풀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스토리 비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다고 해서

그런 (스토리의 방향성하곤 다른) 문제들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로 깊은 사고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의고사 중 몇 개의 이름은 내가 알기로 '전국연합학력평가'다

그리고 모의고사란 이름은 내가 알기로 '수능'을 대비한 모의고사이기 대문에 붙여졌다.

전국 등급이 계산되고, 나의 위치를 판단해준다고 할 때

저런 문제들이 나의 학력, 또는 나의 수학 학습 능력 등을 판단해준다면 그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왜냐면 다들 1등급을 맞고 싶어할 테니까.

 

(3년간 배워야할) 고1 학생들이

주인공이 아닌 것에 힘을 과하게 쏟게 된다면 너무 빨리 지친다.

 

2. 학년이 깊어지며 생겨나는 기술과 능력들이 있다.

 

나는 대학생활 때 수학 학습에 어려움을 느꼈었는데, 위로가 되었던 말이 있다.

우리 과에서 수학을 굉장히 잘하는 선배였는데 (교수님들도 인정하는..)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략 이렇다.

"학부(대학생) 수학에서 할 수 있는 방법론은 사실 많지 않아서.. "

 

대학교 전공 수학 과목은 종류가 꽤나 많은데,

이것들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느낌의 과목이지만 (마치 고등학교의 기하, 확률과 통계, 미적분이 다른 느낌이듯이)

결국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비록 공부가 짧아 실제로 느껴볼 수는 없었지만... (죄송합니다 선생님들)

고등학교 수학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고1이랑 무슨 상관이냐면...

현재 고1들에게 끔찍하게 어려운 문제들이라고 할지라도

고2, 고3을 거쳐 꾸준히 학습하며 경험을 쌓다보면 각각의 경험이 어우러져 고1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다 쉽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학습 내용 외적으로만 생각해도

여러 가지 경우를 분류해서 생각해보는 경험

논리적으로 자신의 말이 맞는지 따져보는 경험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문장을 구체적인 예시로 바꿔가며 생각해보는 경험

등등등 경험이 쌓이다보면 사고력도 증진될 것이다.

 

위 내용은 당연한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게 그래서 고1 모의고사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 이유인 까닭은 무엇인가?

 

중학교 수학을 방금 떼고 온 고1 학생들에게,

(그리고 앞 1번에서 말했듯 다음 스토리를 위한 도구로써의 개념들을 배우고 있는) 고1 학생들에게

난해한 함수 추론 문제라든가.. 하는

다양한 문제 풀이 경험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그런 문제를 바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런 (고등학생 식) 수학에, 혹은 (수능식) 문제풀이에 고1 학생들은 익숙하지 않다.

시간을 두고 학습을 하다보면 점차 길러질 능력들을 '지금 당장' 갖고 있는지 바로 평가받고(이름이 학력평가다..),

학생들 입장에선 그런 문제들을 '지금 당장' 풀어내서 고득점을 받고 싶어하게 된다

 

질문하러 와서 몇 시간이고 고민했는데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들을 볼땐 한 편으론 안타깝게 느껴진다.

 

3. 고학년의 개념으로 풀 수 있는 고1 문제들도 (이따금씩) 있다.

 

고등학교 전체에서 수학 공부를 하면서

수학 과목들의 스토리가 이어지다보면, 이런 경우도 생긴다.

고1에서 (상당히) 맥락없이 연습했던 내용들이

고2, 고3에서 다른 내용들과 결합되면서 거꾸로 맥락이 생기는 것이다.

 

인수정리의 예를 다시 들자면

삼차함수 f(x)의 그래프와 직선 ax+b 가 x=1,2,3 에서 만날때

f(x)=(x-1)(x-2)(x-3)+ax+b 꼴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인수정리를 통해 이야기한다던가... 하는 예시들이다.

 

그럼 고2 학생들은 이제 인수정리를 보면서도

삼차함수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게 되고,

인수정리 문제를 풀면서 함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고2, 고3에서 새로 배우는 내용들도

고1 문제풀이에 도움이 되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다.

예를들면 코사인 법칙을 비롯한 삼각함수나 벡터를 도형 문제에 적용해서 푼다던지..

 

물론 모의고사 출제진은 전국적으로 (혹은 지역별로) 모집되는 굉장히 우수한 출제진이므로

그런 것들도 고려하면서 고1 문제들이 출제가 되지만은..

 

애초에 수학이란 게 그런 것인데 모든 것을 막을 순 없다.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들이 왜 받았는지 살펴보면,

수학 A분야의 안풀리는 문제를 전혀 새로운 B분야의 내용들로 설명해내었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당장 우리나라의 허준이 수학자도 그렇고..)

 

물론 이 항목을 두고 짚고 넘어갈 말은 있다.

'모른채로 고1의 내용만을 이용해 해결하는 경험은 그자체로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하는 건

앞서도 말했듯 모의고사를 둘러싼 외부적인 요소들이다.

 

만약 학생이 모의고사를 반드시 잘 풀어야하는 어떤 외부 요인이 존재한다면..

(모의고사 문제가 당장 내신 시험에 나온다던지, 모의고사 등급이 학생의 자존감을 결정한다던지, 학부모의 기대가 모의고사 등급에도 걸려 있다던지, 심지어는 모의고사 등급으로 수강등록을 받아주는 학원도 봤다.)

그리고 선행 등으로 이미 학생이 찍먹을 해보았고,

거기에 잘난체하기 좋아하는 강사나 옆 학생이 으레 하는

"이거 이렇게하면 더 쉽게 풀리는뒙~~" 을 경험하다보면

 

'어? 선행을 해야 유리하겠구나.' (이는 학생의 기대와 다르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라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맞다. 결국 사실 우려되는 모든 점들은 '당장'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점들이다.

아닌데..

 

4. 모의고사 문제는 훌륭한 문제가 많다.

 

모의고사 문제는 유수의 훌륭한 교사들이 모여 출제된다.

(학력평가에도 교수들이 참여하는지는 모르겠다.)

 

들이는 노력도 엄청날 것이고, 금전적으로도 꽤나 투자되는 사업일 것이다. 대규모의 공적인 사업일테니까

 

그래서 그 결과들은

몇 명의 집필진이 서로를 베끼면서 내는 사설 문제집이나

(안타깝지만) 일반 내신 문제들보다 더 좋은 문제들인 경우가 많고.

 

그리고 애초에 겨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모의고사 4점 짜리는 학습한 내용만을 이용해서 깊은 사고를 통해 풀도록 되어 있음)

(일부 고난도 문제집들은 학습한 내용만을 이용해 풀기보다는, '이런 걸 알고 있니? 풀어봤니?' 수준의 '안 해봤으면 당할 법한' 문제들도 많음)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인지를 기준으로 추린다고 했을때는

모의고사 문제들은 상당히 고급진 문제들이다.

검수와 검토가 끊임없이 진행될 테이므로 틀린 부분도 없을 것이고,

교육과정 상의 내용인지도 끊임없이 확인할 테이므로 안심하고 풀어도 된다.

(사설 문제집은 안풀었으면 좋겠는 이상한 문제도 상당수다..)

 

아니 이렇게 좋은데 왜 반대하는가?

 

위에서 모의고사를 둘러싼 슬픔은

'지금 당장' 이 문제들을 풀어내는 학생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이야기했다.

 

근데, 문제가 너무 좋으면

내신 시험에 연계되기 쉽다. ㅋㅋ..

(내신 시험이 아니더라도 사설 문제집들에서도 모의고사 기출 문제를 베껴서 내기도 한다. 수학의 정석에도 기출문제 들어가 있다!ㅋㅋ)

 

물론 이건 상대평가 형식의 내신 시험이라는 것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이다.

좋은 문제라면 어김없이 내신 시험에 등장할 테니까.

 

사실 '모르면 당하는' 사설 문제들이 내신 평가에 연계되는 것보다는

이런 사고력 중심의 문제들이 내신 평가에 등장하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그러네.. 그럼 결국엔 위 모든 항목에 비추어본다면,

그렇다. 사실 고1 수학 내신 평가도 안했음 좋겠다. 상대 평가를 하질 말든지.. 폐단이다. 폐단

 

어쨌든 다시 돌아가보면, 

'지금 당장'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

당장 나의 내신 등급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고1들은 조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 선행도 기웃거릴 수도 있고,

아직 젖어들지 못한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하고 원망하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했을 때 학생, 교사에게 할만한 제언을 적어보며 마치고자 한다.

 

학생 ) 조급하지 말자.. 꾸준히 학습하다보면 젖어들 것이다.

젖어들지 않은 자신을 원망할 게 아니라,

현재 자신이 못 푼 고난도 문항들도 다시 보고 생각해보면서 천천히 젖어들게 하면 된다.

영영 젖어들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해당 문제는 보류하고 나중에 다시 봐도 된다.

 

1학년 모의고사 성적만으로 3년간의 고등 수학 학력을 재단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초조해하지 말자!

 

모의고사의 고난도 문항을 풀기위해 선행학습을 할 필요는 없다.

완벽한 주객전도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로 준비하고 대비하자.

 

교사 ) 이런 말씀을 굳이 드리지 않아도 아실 교육 전문가 분들이시겠지만,

'지금 당장' 풀기 너무나 힘든 수준의 문제는 평가에 연계되는 것은 지양하였으면 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으레) 쉽게 풀 수 있을만한 문제,

다른 내용을 배우면 더 쉬워질 것이 보이는 문제들은 전문가적 소견으로

(이미 모의고사 출제진이 한 번) 걸렀겠지만, 다시 한 번 교사들이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가 수학 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훨씬 높으니까요.

아이들의 학습 방향을 안내해줄 수 있는 사람들로서

둘러싼 외부 요인들로 인해 항상 어렵지만,, 한 번씩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고 어렵다..!